옛 문헌 속 음식과 공예

웅후

공공데이터 조회일 2026-09-27 · 지식재산처

웅후 기본 정보
이름 웅후
의례 군례

자주 묻는 질문

웅후는 무엇에 쓰던 물건인가요?

『춘관통고』(1788년(정조 12) 경)에 기록된 웅후의 용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조선후기 1788년(정조 12)에 정조(正祖)는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 등의 내용을 모아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 오례(五禮)를 상세하게 기록한 『춘관통고(春官通考)』를 편찬하였다. 조선 왕실의 군례(軍禮) 때 웅후(熊侯)는 왕이 화살을 사용하는 과녁으로 사용하고, 미후(麋侯)는 문무관(文武官)의 과녁으로, 시후(豕侯)는 무과(武科) 시험과 교습(敎習) 때의 과녁으로 사용한다.

웅후는 어느 문헌에 기록되어 있나요?

웅후는 『춘관통고』(1788년(정조 12) 경) 권75, 군례(軍禮), 의도(儀圖)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자로는 熊侯라고 씁니다.

웅후는 무엇으로 만들었나요?

기록된 웅후의 재료는 베[布], 가죽[皮], 백칠(白漆)입니다.

웅후는 어떻게 만들었나요?

제작 과정은 9단계로 기록되어 있으며, 앞부분은 웅후(熊侯)는 적색 베[布]로 바탕을 만든다. / 높이와 너비는 1丈 8尺으로 만든다. / 너비를 3분하여 그 1분을 과녁[鵠]으로 만든다. … 순서입니다.

웅후는 어떤 의례·갈래의 물건인가요?

웅후는 무기 갈래의 기물이며 군례에 쓰였습니다. 시대는 조선후기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웅후에 대해 문헌에는 어떻게 적혀 있나요?

번역문 일부를 옮기면 “웅후(熊侯)는 적색 베[布]로 바탕을 삼는다. 높이와 너비는 1丈 8尺이다. 너비를 3분하여 그 1분을 과녁[鵠]이 차지한다. 과녁[鵠]은 사방 6尺인데 백칠(白漆)한 가죽[皮]으로 모나게 만들어서 후(侯)의 중앙에 곰 머리[熊首]를 그린다. 이것은 어사(御射)에 사용……”입니다.

다른 문헌에도 웅후가 나오나요?

같은 이름의 공예품은 이 기록을 포함해 모두 5건이 여러 문헌에 전합니다.

이 옛 문헌 기록의 출처는 어디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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