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접
공공데이터 조회일 2026-09-27 · 지식재산처
| 이름 | 빗접 |
|---|---|
| 의례 | 흉례 |
자주 묻는 질문
빗접은 무엇에 쓰던 물건인가요?
『정조국장도감의궤』(1800년)에 기록된 빗접의 용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조선후기 1800년(순조 즉위년) 정조(正祖)의 국장(國葬) 때, 소함(梳函)은 빗 등을 넣은 함(函)으로 조선 왕실의 국상(國喪) 때 왕릉(王陵) 속에 시신과 함께 넣던 부장품(副葬品)으로 사용하였다.
빗접은 어느 문헌에 기록되어 있나요?
빗접은 『정조국장도감의궤』(1800년) 국장도감의궤 권2, 이방 복완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빗접은 무엇으로 만들었나요?
기록된 빗접의 재료는 잣나무판(栢子板), 흑진칠(黑真漆), 홍초(紅綃), 홍광적(紅廣的), 보자기(袱), 홍방주(紅方紬)입니다.
빗접은 어떻게 만들었나요?
제작 과정은 6단계로 기록되어 있으며, 앞부분은 소함(梳函)은 1件을 만든다. / 소함은 빗접[梳貼] 및 빗[梳]을 갖추어 복완함(服玩函)에 같이 넣는다. / 소함은 잣나무판(栢子板)으로 길이 7寸 5分, 너비 5寸 5分, 뚜껑[蓋]까지 포함한 높이 2寸 5分으로 만… … 순서입니다.
빗접은 어떤 의례·갈래의 물건인가요?
빗접은 흉례에 쓰였습니다. 시대는 조선후기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빗접에 대해 문헌에는 어떻게 적혀 있나요?
번역문 일부를 옮기면 “소함(梳函)은 1坐이다. 빗접[梳貼] 및 빗[梳]을 갖춘다. 평상시 사용하던 것을 대내(大內)에서 복완함(服玩函에) 같이 넣어 내린다. ○ 각 년의 등록(謄錄)에는 “만일 새로 만들면 잣나무판[柏子板]으로 한다. 길이 7寸 5分, 너비 5寸 5分. 뚜껑까지의 높이 2寸……”입니다.
이 옛 문헌 기록의 출처는 어디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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