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답상석
공공데이터 조회일 2026-09-27 · 지식재산처
| 이름 | 각답상석 |
|---|---|
| 의례 | 흉례 |
자주 묻는 질문
각답상석은 무엇에 쓰던 물건인가요?
『영조국장도감의궤』(1776년)에 기록된 각답상석의 용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조선후기 1776년(정조 즉위년) 영조(英祖)의 국장(國葬) 때, 각답상석(脚踏上席)은 은교의(銀交倚) 아래에 쓰이던 발받침으로 사용하였다.
각답상석은 어느 문헌에 기록되어 있나요?
각답상석은 『영조국장도감의궤』(1776년) 국장도감의궤 권상, 이방 품목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각답상석은 무엇으로 만들었나요?
기록된 각답상석의 재료는 자적주(紫的紬), 자적향사(紫的鄕絲), 자적정주(紫的鼎紬)입니다.
각답상석은 어떻게 만들었나요?
제작 과정은 5단계로 기록되어 있으며, 앞부분은 각답상석(脚踏上席)은 2件을 만든다. / 매 件은 2紋 별문석(別紋席)으로 만든다. / 선(縇)은 자적주(紫的紬) 반반골(半半骨)로 3尺 5寸, 자적향사(紫的鄕絲) 3分으로 두른다. … 순서입니다.
각답상석은 어떤 의례·갈래의 물건인가요?
각답상석은 흉례에 쓰였습니다. 공예 분야로는 초고공예에 속합니다. 시대는 조선후기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각답상석에 대해 문헌에는 어떻게 적혀 있나요?
번역문 일부를 옮기면 “각답상석(脚踏上席)은 2件이다. 매 件에 들이는 것은 2紋 별문석(別紋席)이다. 선(縇) 감은 자적주(紫的紬) 반반골(半半骨)로 3尺 5寸, 자적향사(紫的鄕絲) 3分이다. 교의(交倚)의 위에 덮어 씌우는[上蓋覆] 감은 자적정주보자기[紫的鼎紬袱] 2件이다. 매 件에 들인……”입니다.
이 옛 문헌 기록의 출처는 어디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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