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대
공공데이터 조회일 2026-09-27 · 지식재산처
| 이름 | 옥대 |
|---|---|
| 의례 | 흉례 |
자주 묻는 질문
옥대는 무엇에 쓰던 물건인가요?
『춘관통고』(1788년(정조 12) 경)에 기록된 옥대의 용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조선후기 1788년(정조 12)에 정조(正祖)는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 등의 내용을 모아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 오례(五禮)를 상세하게 기록한 『춘관통고(春官通考)』를 편찬하였다. 옥대(玉帶)는 조선후기 왕실에서 왕이나 왕후가 돌아가신 후 시신에 입힌 옷 위에 띠는 허리띠로 사용한 것이다. 왕이나 세자의 것은 홍색이고, 왕후나 세자빈의 것은 남색을 사용한다.
옥대는 어느 문헌에 기록되어 있나요?
옥대는 『춘관통고』(1788년(정조 12) 경) 권85, 흉례(凶禮)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자로는 玉帶라고 씁니다.
옥대는 무엇으로 만들었나요?
기록된 옥대의 재료는 종이[紙], 홍광직(紅廣織), 모단(冒緞), 니은(泥銀)입니다.
옥대는 어떻게 만들었나요?
제작 과정은 5단계로 기록되어 있으며, 앞부분은 옥대(玉帶)는 두꺼운 종이[紙]를 사용해 가죽띠[鞓]를 만든다. / 띠 위에는 홍광직(紅廣織)으로 싼다. 여자의 띠 위에는 남광직(藍廣織)으로 싼다. / 그 위에는 모단(冒緞)으로 싼다. … 순서입니다.
옥대는 어떤 의례·갈래의 물건인가요?
옥대는 복식 갈래의 기물이며 흉례에 쓰였습니다. 시대는 조선후기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옥대에 대해 문헌에는 어떻게 적혀 있나요?
번역문 일부를 옮기면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에 따르면, “옥대(玉帶)는 두꺼운 종이[紙]를 사용해 가죽띠[鞓]를 만든다. 홍광직(紅廣織)으로 싼다[내상(內喪)에는 남광직(藍廣織)을 사용한다]. 모단(冒緞)으로 싼다. 니은(泥銀)으로 띠쇠[銙]를 그린다[곧 띠돈[帶錢]은 크고 작은 것……”입니다.
다른 문헌에도 옥대가 나오나요?
같은 이름의 공예품은 이 기록을 포함해 모두 2건이 여러 문헌에 전합니다.
이 옛 문헌 기록의 출처는 어디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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