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최관
공공데이터 조회일 2026-09-27 · 지식재산처
| 이름 | 제최관 |
|---|---|
| 의례 | 흉례 |
자주 묻는 질문
제최관은 무엇에 쓰던 물건인가요?
『국조상례보편』(1758년(영조 34))에 기록된 제최관의 용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조선후기 1758년(영조 34)에 영조(英祖)는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를 편찬하고 그중 흉례(凶禮)의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을 편찬하였다. 자최관(齊衰冠)은 왕실(王室)의 국장(國葬) 때 상복(喪服)을 입고 머리에 쓰던 관이다.
제최관은 어느 문헌에 기록되어 있나요?
제최관은 『국조상례보편』(1758년(영조 34)) 도설(圖說), 성복(成服)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최관은 무엇으로 만들었나요?
기록된 제최관의 재료는 배접한 종이[糊紙], 포(布), 삼노끈[麻繩]입니다.
제최관은 어떻게 만들었나요?
제작 과정은 5단계로 기록되어 있으며, 앞부분은 제최관(齊衰冠)은 배접한 종이[糊紙]로 만든다. 너비는 3寸, 길이는 정수리 전후에 충분히 걸치게 만든다. / 가는 포(布)로 싸서 3㡇을 만든다. 모두 오른쪽으로 향하게 하여 세로로 재봉한다. / 이마 위에서 삼노끈[麻繩]으로 묶는다. 목 뒤에서 교차한 후 앞으로 와서 귓가에 이른 뒤에 묶는다. … 순서입니다.
제최관은 어떤 의례·갈래의 물건인가요?
제최관은 흉례에 쓰였습니다. 시대는 조선후기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최관에 대해 문헌에는 어떻게 적혀 있나요?
번역문 일부를 옮기면 “제최관(齊衰冠)은 배접한 종이[糊紙]를 재료로 삼는다. 너비는 3寸이고 길이는 정수리 전후에 충분히 걸치게 한다. 포로 싸서[각각 그 복제보다 조금 가는 것을 쓴다] 3㡇을 만들되, 모두 오른쪽으로 향하게 하여[소공(小功)이하는 왼쪽을 향하게 한다] 세로로 재봉한 것을……”입니다.
다른 문헌에도 제최관이 나오나요?
같은 이름의 공예품은 이 기록을 포함해 모두 2건이 여러 문헌에 전합니다.
이 옛 문헌 기록의 출처는 어디인가요?
지식재산처 · 한국전통지식 전통공예정보 · 조회일 2026-09-27 공공데이터포털 원본 보기
이 페이지 게시 중단 요청
이 페이지는 지식재산처가 공개한 한국전통지식(전통식품·전통공예) 정보를 옮겨 정리한 것입니다. 권리자이거나 게시에 이의가 있으면 아래에서 요청해 주세요. 확인되면 이 페이지를 내리고 검색엔진에도 삭제를 알립니다.